‘레노바레’란 Quaker 교도인 리차드 포스터(Richard - TopicsExpress



          

‘레노바레’란 Quaker 교도인 리차드 포스터(Richard Foster)에 의해 1988년에 설립된 것으로 ‘새롭게 한다’라는 라틴어를 제목으로 영성훈련을 목적으로 하는 운동이다. 수면 위에 떠오른 주장이나 활동들은 무해한 것 같아 보이지만 약간의 관심만 가지고 속을 들여다봐도 심사숙고 해야 할 부분들이 많은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우선 ‘퀘이커 교도’들은 인간 내면에 ‘내적 빛’(Inner Light)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내적 음성을 들음으로써 진리로 인도함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즉, 하나님 말씀의 객관적 타당성보다는 내적 빛의 영향 아래 얻는 개인의 깨달음이나 감정적 체험을 주장하고 있다. 포스터는 매순간 하나님과의 상호관계 아래 ‘with-God-life’를 주창하고는 있지만, 신비주의 전통과 그 훈련연습에 기초하는 초월자와의 만남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관조적 차원(contemplative dimension) 없이는 완전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토마스 머튼’이 말한 바 “오늘날 기독교 안에서 가장 중요하게 필요한 것은 관조적 영(靈)에 의해 조성(육성)되는 내적 진리이며, 관조(관상)기도나 내밀(內密)기도 없이는 교회가 인류를 변화시키거나 구원하기 위한 사명을 완수할 수 없다 (The most important need in the Christian world today is this inner truth nourished by this Spirit of contemplation. Without contemplation and inner prayer the Church cannot fulfill her mission to transform and save mankind)”라는 신비주의 사상과 일치한다. 정통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간구원은 오직 ‘복음’으로 말미암는 것이지 내적 빛이나 무념 무상, 각성, 계몽에 의해서가 결코 아니며, 이는 기독교 핵심교리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주장이다. 그가 장려하는 바 ‘영성훈련’에는 내적훈련, 외적훈련, 공동훈련 삼단계가 있으며 명상, 침묵, 금식, 학습, 근검, 고독, 봉사, 고백 등의 18가지 훈련으로 나눠져 있다. 그의 ‘침묵’(silence)이란 단순한 정적을 말함이 아니라 관조적 신비상태를 뜻하며, 외마디 단어나 관용구를 사용하는 ‘호흡(숨) 기도’를 통하여 무념(無念)의 상태에서 神의 임재를 체험하라는 것이다. 그의 저서 ‘Celebration of Discipline’에서는 “기독인의 명상이란 채움을 얻기 위하여 마음을 공허(空虛)하게 비우기를 시도하는 것”이라 하면서, (텅)빔을 추구하는 동양 신비주의를 답습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성경은 마음을 비우는 방법이나 기술을 통하여 우리 안에 하나님의 은혜와 은사를 채우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는 2005년도에 ‘Renovare Spiritual Formation Bible’을 출간하였는데 ‘달라스 윌라드’와 ‘월터 브뤼게만’ ‘유진 피터슨’ 등 약 50명이 편찬위원으로 참여했으며 이들은 학습 주해를 통해서 포스터의 Mystical thinking을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외경(Apocrypha)을 포함시키면서, 원래 성경이 가지고 있는 역사성과 그 예언적 정확성을 경시하고 있음을 창세기 General Instruction 에서 보여주고 있다. 구전되어온 이스라엘의 가족사에 신학적 의미를 부여하고 또 유일신 사상을 고취하려는 의도에서 고대 근동의 종교적인 설화와 신화들을 수집 기록하면서 그들의 종교가 우주적 창조라는 보다 큰 질서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확증하기 위하여 창세기 1장부터 11장을 추가했다는 주장이다. (한글 번역본 p.64) 만약에 이를 사실로 인정한다면, (구약의) 죄를 깨닫게 하는 율법과 그 율법이 할 수 없는 용서인 (신약의) 보혈의 구속사로 연계되는 에덴 동산의 범죄(원죄)가 한갓 신화로 취급당하게 되는 꼴이니, 예수 그리스도는 결과적으로 신화적 산물이요 허상일 뿐이며 우리 인류도 신화적 죄의 종이 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또 누가복음 12:8-9 주해(번역본 p.1703) 에는 ‘일반적으로 고백이란 성직자나 믿을 만한 친구 앞에서 우리의 죄를 인정함으로써 자유함을 누리고 더 큰 사역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썼는데, 죄인인 인간끼리 서로 죄를 고백함으로써 자유함을 누릴 수 있다는 해괴한 주장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궁금해진다.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 하는 자들이라”(딤전4:1-2) 고 성경은 훈계하고 있다. 아울러 레노바레 성경의 편집자 중 하나인 ‘유진 피터슨’은 자신의 사상과 주장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와 관용구를 사용하여 ‘이야기 성경’인 메세지(the Message) 완역을 2002년에 내놓았다. 그의 사적(私的)인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참고 주석’ 정도의 의역(意譯-Paraphrase) 으로는 용인할 수 있겠지만, 성경 번역이라는 범주에서는 크게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본인도 Study Bible을 대신할 의도는 없다고 머릿말에 기술한 바, ‘성경 번역’이라 함은 Word to Word 와 Phrase to Phrase 로 가감없이 변환되어야 올바른 번역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powershield.blogspot.kr/2011/04/blog-post_02.html
Posted on: Thu, 14 Nov 2013 02:50:4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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