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우리 구원의 기원 베드로후서 1:16 16 우리 주 - TopicsExpress



          

14. 우리 구원의 기원 베드로후서 1:16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복음을 설교하면서 기억해야 하는 것은 구원이란 우리의 체험이기 전에 하나님의 위대한 생각이란 점이다. 체험은 구원이 우리의 의식 세계로 들어오는 입구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바른 관계가 맺어질 때 나타나는 증거이다. 절대로 체험을 설교하지 말라. 그 체험 뒤에 놓여 있는 하나님의 위대한 생각을 설교하라. 사람들이 영적으로 정체되는 이유는 자신들의 체험의 그림자를 넘어서서 모든 체험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그 계시”이며 우리의 모든 체험은 주님께로 따라 올라가 그분 안에 거하게 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1) 우리의 구원의 초자연성 에베소서 1:7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요한복음 3:7-8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기독교의 굵직한 사건들에 근거하지 않은 잘못된 영성을 조심하라. 굵직한 사건 중에 하나는 죄악에 대한 용서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 (엡 1:7). 죄사함은 하나님의 은혜의 기적이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완전하게 용서하셨다는 그 놀라운 사실을 깊게 묵상해 본 적이 있는가? 죄사함은 우리가 미안해 하기 때문에 허락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주님의 자비 때문이다. 하나님의 용서는 오직 초자연적인 영역에서 자연스럽게 허락되는 것이다. 또 다른 굵직한 사건은 중생이다. “내게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곧 성령의 초자연적인 재창조를 수단으로 하여 당신에게 새생명이 침투하여야 한다는 말씀이다.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바람처럼 신비한 사건이지만 하나님의 가장 분명한 역사이다. 기독교 내에 이러한 초자연적인 역사를 희석시키려는 경향을 주의하라. 2) 우리의 구원의 본질 에베소서 4:13-16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사역자의 개성이 종종 복음을 가릴 때가 있다. 그 이유는 제시된 진리에 의하여 사람들의 발이 끌리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제시하는 사역자의 개성이 너무나 강하여 그 힘에 빨려 들어가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특이한 개성을 사용하셔서 무시되었던 진리를 강조하시기도 한다. 그러나 사역자가 어떤 개성을 가졌던 간에 그들은 구원의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 3:30). 이것이 복음을 전하는 설교자의 유일한 기준이다. 세례 요한은 개성에 근거한 설교자가 되려는 자세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말해준다. 설교자의 자격은 오직 선포되는 복음의 “메시지” 때문이어야 한다. 많은 설교자들이 그리스도의 박애적인 면을 설교한다. 유가족을 향한 주님의 동정심, 고통과 죄로 물든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당하는 슬픔을 위로하시는 위로자 예수님을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들을 때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러나 설교자는 사람의 근본적인 필요를 만족시키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따라서 이를 위하여 그들의 진정한 필요가 무엇인지를 드러내야 하는데 이때 그들은 분개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내리신 판결을 나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분이 나에 대하여 죄악이 가득한 죄인으로 판결하신 것에 대하여 나는 믿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부패한 마음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절대로 믿지 않는다. 오직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 속에 주님께서 진단하신 것이 깜짝 놀랄만한 진리임을 계시하실 때에야 그들은 자신들의 사악함을 인정하게 된다 (참조, 막 7:20-23).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에 관한한, 사람들에게 어떠한 말을 들어도 절대로 부담을 갖지 않았다. 바울의 마음 속에 흐르는 간절한 호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였다 (참조, 고전 2:2). 하나님의 찢겨진 마음인 구속의 비극 (십자가)을 선포하는 설교자는 언제나 인간의 조건과 비극을 동정하는 척하며 복음을 대항하는 여러 방해꾼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설교자로서 사람의 조건을 기억하지 말라. 오직 구원을 위한 굵직한 사건들을 기억하라. 그러한 사건들을 감추려고 시도하지 말라.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
Posted on: Fri, 16 Aug 2013 18:50:4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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