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하나님의 심연(the abysses of God)을 - TopicsExpress



          

17. 하나님의 심연(the abysses of God)을 확신하라 구원은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측량할 수 없이 깊다. 구원은 체험이 아니다. 체험은 단지 구원이 우리에게 의식되어지는 매우 작은 부분일 뿐이다. 우리는 체험의 배후에 있는 하나님의 위대한 생각을 설교해야 한다. 1) 무한한 사랑에 내린 심판 베드로전서 4:17 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어려워하는 자들 편에 서서 그들을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 하나님은 비난 받으실 것이 없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에게 진리를 제시하면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보여주실 것이다. 심판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임을 기억하라. 따라서 우리는 심판에 대하여 반드시 언급해야 한다. 설교에서 가장 혹독한 시험은 모든 사람을 심판으로 이끄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성령께서 각 사람을 책망하신다. “나는 그것만은 할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하지 말라. 이는 무의식적인 신성 모독이다. 만일 자신의 무능 때문에 복음이 막힌다면 이는 하나님을 고려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내 자신을 의지하려는 모든 불신앙적 요소들을 철저하게 제거하라. “나는 시키시는 대로 할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직 자신에게 의지할 것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진정한 성도는 “나는 할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가 할 수 없다면 주께서는 그러한 요청을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온전한 연약함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성령이 주님의 능력을 드러내신다. 사역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빛으로 볼 때 정죄 받을 만한 것이 절대로 없어야 한다. 2) 십자가의 심연에 선 양심 고린도후서 5:10-12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11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 12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로 말미암아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대답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양심은 십자가 앞에서 교육되어져야 한다. 사역자로서 우리는 사람들의 양심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대면하도록 해야 한다. 나의 삶은 과연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흘리신 보혈의 가치를 드러내고 있는가? 십자가를 통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평강과 능력으로 나의 삶과 재능 가운데 나타나는가? 그렇지 않다면 나는 뭔가 잘못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란 성령께서 나를 주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강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 내가 모든 덕을 다 소유할 때까지, 모든 승리를 얻을 때까지, 모든 생각이 거룩하여질 때까지, 내 안에 주님만 남을 때까지, 십자가만 붙듭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양심을 바르게 세워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계속 십자가의 빛 가운데 머무는 것이며 성령을 의지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주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그리스도와 십자가로부터 우리의 눈을 떼고 이제 자신의 체험 위에 신앙을 세우려고 하면 이는 우리를 구원한 그 능력에 대항하여 반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께서 나를 깨끗하게 하셨으니 나는 내 힘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버리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사로 잡힌 바 되어 그리스도의 빛 가운데서 걸을 때에만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거룩함이 우리 안에서 나타나게 된다. “적절한 생각을 먼저 생각하자” 라고 하며 지적인 생각을 앞세우지 말라. 먼저 적절한 삶을 살라! 그러면 당신은 적절한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자아-계시이다. 곧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주시는 방법이었다. 오늘날 설교를 들어보고 신앙관련 책들을 읽어보면 영특한 사람의 지혜는 보이지만 얄팍한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 그 이유는 그 내용들이 십자가의 그 놀라운 사건과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하나님 자신과 일치시키기 위하여, 또한 그들을 높이시기 위하여 자기 자신마저 다 주신 그 놀라운 십자가의 사건! 사람들은 그 사건에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3) 속죄의 심연에 선 도덕성 고린도후서 5:20-21 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 곧 신체적, 도덕적, 영적인 부분은 속죄의 거룩의 기준에 의하여 평가되어야 하기 때문에 사역자는 언제나 속죄에 대하여 깊이 묵상하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의미하지 않는 거룩을 절대로 말하지 말라. 하나님의 거룩은 삶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감시 하에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며 동시에 그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충분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언제나 유혹은 타협을 통하여 찾아온다. 타협은 음성은 “너무 까다롭게 거룩을 세우려고 하지 말라. 너무 강력하게 순결을 부르짖지 말라. 너무 올바른 절제를 주장하지 말라” 고 속삭인다. 그러나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동행을 가로 막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이 당신 안에 있던, 다른 사람에게 있던 조금도 타협할 마음을 갖지 말라. 4) 복음의 심연에 선 자유함 갈라디아서 5:1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자유함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주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지 못한다면 그 자유를 제시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이 우주에는 단 하나의 자유함만이 있다. 바로 우리의 양심 안에서 역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자유함이다. 이 자유는 우리에게 옳은 것을 할 수 있도록 한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자유로 자유하다면,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우리가 영향을 미치는 자들도 우리가 누리는 똑같은 자유함을 누리기 시작할 것이다. 언제나 당신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하여 평가하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어주시는 멍에만 메고 그 외의 다른 멍에는 아무 것도 메지 말라.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지 않은 멍에를 다른 사람에게 두지 않도록 주의하라. 우리가 행하는 것처럼 행하지 않는 사람들을 틀렸다고 생각하는 데에서 벗어나는 것은 오래 걸린다. 이러한 관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관점이 아니다. 우리가 온전히 온화하신 주님과 한마음이 될 때 온화하신 주님을 분명히 증거할 기회를 갖게 된다. 사역자의 삶은 주님의 손에 사로 잡혀 희생됨으로 다른 사람들의 자유함을 위한 자양분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
Posted on: Sun, 25 Aug 2013 20:1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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