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객석 파리 통신원 김나희가 만난 영화감독 - TopicsExpress



          

월간객석 파리 통신원 김나희가 만난 영화감독 박찬욱. 7월호 인터뷰 전문이 네이버 매거진에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글 쓸 때나 산책할 때, 음악을 많이 듣습니다. 특히 말러. 말러 교향곡 전곡을 다 좋아해요. 말러는 물론 브루크너ㆍ베토벤ㆍ브람스ㆍ시벨리우스ㆍ쇼스타코비치 등등의 교향곡을 좋아합니다. 작업하는 방에 오디오는 없고, 글 쓸 때는 헤드폰을 쓰고 들어요. 고음악도 제가 영화에 자주 사용했는데, 조르디 사발의 연주들을 좋아합니다. ‘세상의 모든 아침’의 영화감독을 만나봤어요. 지난해 돌아가신 알랭 코르노 감독이요. ‘공동경비구역 JSA’로 도빌 영화제에서 상을 받을 때 그분이 심사위원장이었어요. 내가 ‘세상의 모든 아침’을 정말 좋아한다고 했더니, 당신은 사발이 직접 그린 악보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을 하셨어요. 제 영화에는 바로크 음악을 많이 썼지만, 평소엔 교향곡을 많이 듣고, 지휘는 딱히 가리지 않아요. 불레즈ㆍ아바도ㆍ번스타인… 다양하게 좋아하고, 특히 하이팅크를 좋아해요. 가장 좋아하는 지휘자가 하이팅크예요. 쇼스타코비치는 하이팅크의 연주만 듣습니다. 한스 슈미트 이세르슈테트의 베토벤도 좋아해요. 하이팅크와 이세르슈테트 두 분 모두 쇼맨십과 스타성이 강한 분들은 아니죠. 대중 스타가 아닌 명장, 장인이랄까. 하이팅크는 레퍼토리의 폭이 넓고 순수하게 음악을 섬기고요. 브루크너는 역시 첼리비다케가 가장 압권이에요.” “필립 글래스ㆍ존 애덤스ㆍ볼프강 림 정도는 종종 들어요. 선호도를 따진다면 미요나 풀랑크를 더 선호하고, 리게티도 좋아해요. 영화에도 많이 사용되었죠. 미국에서는 편집하고 영화가 완성되기 전,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프리뷰를 합니다. 반응을 보고 설문조사를 해서 편집에 반영하는 건데, 그럼 음악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그 시기에는 영화음악이 완성되어있을 때가 아니라, 임시 음악을 넣어요. 그냥 기성 음악이죠. 상업적 목적의 공개가 아니니까 판권을 사는 것도 아니고, 이미 있는 영화음악을 갖다 쓰기도 하고요. ‘스토커’에서 볼프강 림을 한 군데 사용했어요. ‘스토커’ 각본이 처음 왔을 때, 피아노 듀엣 장면에 에릭 사티 풍이라고 쓰여 있었어요. 내가 에릭 사티 풍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해서 각본을 다 고쳤어요. 고치면서 거기에 필립 글래스 풍이라고 쓰고. 한번 필립 글래스한테 작곡을 의뢰해봤으면 싶었지만, 기대는 안 했어요. 어차피 안 될 테니 다른 영화음악 작곡가한테 필립 글래스 풍으로 해달라고 할 생각이었어요. 그래도 시도를 해봤는데 필립 글래스가 내 영화를 좋아한다며, 하겠다는 거예요. 꿈인가 생시인가 싶고, 이게 바로 할리우드 영화를 하는 맛이구나 싶었죠. 뉴욕에서 만나보니 굉장한 장난꾸러기에 쾌활한 사람이었어요. 시나리오를 읽으면 피아노 듀엣 장면에 에로틱한 느낌이 전해져요. 필립이 나더러 이 곡을 통해 무엇을 원하느냐고 해서 “이건 말이 피아노 듀엣 연주이지 사실은 섹스예요”라고 답했어요. 필립도 각본을 다 읽고 왔으니까, 정말 그렇다며 좋아하더라고요. 예전에 네 손을 위한 피아노곡을 썼을 때, 초연했던 연주자들이 친구 부부였다고 해요. 연습을 해와서 보여주는데, 남편이 “그런데 이거 아세요?”라면서 자기 아내 어깨의 바깥으로 팔을 뻗어 아내를 끌어안은 채 연주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더래요. 이거 좀 에로틱하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 아 그거다, 싶어서 밤에 시나리오를 고쳐서 그렇게 연주할 수 있도록 작곡해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피아노 신이 완성되었죠. 나는 촬영지였던 내슈빌이랑 프로덕션이 있는 LA에 있는데, 자주 못 만나니까 뉴욕에 있는 필립과 전화나 스카이프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곡을 굉장히 빨리, 칼 같이 마감을 지켜서 쓰시더군요. 워낙 다작을 하는 분이지만 정말 프로페셔널이었어요. 정확히 마감을 지키는 건 물론이고 나처럼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이 이런저런 요구를 해도 다 이해하고, 영화감독으로서 구체적인 요구가 있는 게 좋다고 하시는 거예요. 이런 대가한테 이렇게까지 해도 되나 싶을 만큼, 요구를 많이 했어요. 내 영화고 내가 감독이고 영화적 완성도를 위해 원하는 지점이 있으니 도리가 없잖아요. 다른 영화음악 작곡가에게 하듯이, 필립 글래스에게 이런저런 걸 시키고 고쳐달라고 하는데, 그래 놓고 속으로 떨었어요. 통역이 있어서 다행이더라고요. 직접 말했으면 더 떨렸을 거예요. 그런데 필립은 화 한번 내지 않고 내가 원하는 음악을 만들어냈어요. 결국 마지막에 내가 이만한 대가한테, 나이 있는 분한테 이러기도 쉽지 않다고 이야기하면서 용서하시라 했는데도 감독으로서 네가 뭘 원하는지 알고 두루뭉술하지 않은 게 더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 피아노 신이 영화 전체의 핵심인데, 음악으로 인해 완성이 된 장면이죠. 음악과 만나기 이전에도, 영화적인 측면만 보더라도 촬영이 가장 잘 되었고 그만큼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는 장면이에요. 그동안 많은 영화에 악기 연주하는 장면들은 가끔 나오지만 이렇게 감정이 농밀하게 전달되는 건 드물지 않나 싶어요. 다만 내가 악보를 볼 줄 알고 악기를 할 줄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은 있어요.” “지휘자도 객원지휘하러 갔는데 리허설을 넉넉하게 하고 싶어도 못 하잖아요. 상임으로 맡고 있는 오케스트라가 있다면 더 좋은 단원으로 바꾸고 싶고, 연습 환경도, 공연장도 더 개선하고, 협연자를 일류 수준으로 데려오고 싶어도 다 할 수는 없어요. 프로그램 선정할 때 현대음악이나 새로운 실험적 시도를 하고 싶어도 대중성이 떨어진다고 반대에 부딪힐 수 있고요. 이런 제약은 영화ㆍ오페라ㆍ오케스트라ㆍ뮤지컬처럼 큰 돈이 들어가는 장르에서는 어쩔 수 없어요. 영화감독의 일은 끝없는 타협과 절충이에요. 굉장히 극단적인 작품을 만드는 감독이라 할지라도 끝없이 절충을 할 수밖에 없죠. 우리는 그런 생활을 계속하고 있으니까, 적응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 있어요. 그게 생각보다 고통스럽지는 않아요. 지휘자에 비하면 영화감독은 불만스러운 상황을 훨씬 더 많이 겪어야 하니 익숙해져야 해요. 영화 속에서 캐릭터와 장면에 더 어울리는 찻잔을 찾고 싶은데 그 찻잔이 수백만 원을 호가한다면 어쩔 수 없는 거예요. 어느 선까지는 최선을 향해서 노력하지만 또 적당히 어느 선에서 만족하는 수밖에 없죠. 최상의 것을 못하면 그 다음을 택하면 되고. 감독 입장에서는 촬영을 많이 할수록 좋아요. ‘스토커’는 촬영이 40회였는데, 한 60회였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럴 여유가 없으니 촬영 회차부터 모든 게 다 타협이었죠. 40회다, 줄여야만 한다. 그럼 최종 편집에서 안 쓸 것으로 예상되는 처음부터 안 찍는 거죠. 좀더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연구를 해서 최대한 효과적으로 촬영을 하는 거예요. 찻잔이 필요할 때에는 내가 원하는 게 최상은 이것이지만 그게 아니면 이거, 다음은 이거, 이렇게요. 영화는 그래서 어려운 예술이에요. 원 없이 예산을 쓰려면 굉장히 상업적인 영화를 하면 되겠지만, 그건 또 나름의 제약이 있으니까요. 차라리 내가 원하는 영화를 하면서 가난하게 하는 게 낫지.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하려면요. 예를 들어 ‘트랜스포머’ 같은 블록버스터 하는 걸 좋아한다면 그걸 하는 게 맞지만, 추구하는 영화가 그게 아니라면 엄청난 예산이 의미가 없어요. 차라리 타협해가면서 진짜 하고 싶은 영화를 해야지.”
Posted on: Wed, 31 Jul 2013 01:1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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