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학살 부끄러운 미국의 - TopicsExpress



          

전쟁과 학살 부끄러운 미국의 역사 눈먼돈챙기기(2) 미국의 예산회계제도는 단 한 푼을 사용해도 의회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미국행정부는 궁여지책으로 변칙적인 방법으로 자금을 마련하는 일도 있었다. 그 좋은 예의 하나로 미국 행정부는 사회주의를 추종하는 니카라과 좌익정부를 전복시킬 목적으로 CIA가 콘트라(CONTRA) 반군을 육성하여 다니엘 올테가(Daniel Ortega)가 이끌고 있는 좌경정부를 전복시키도록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었으나 의회가 콘트라 반군에 대한 지원금의 거부로 콘트라 반군은 거의 지리멸렬상태가 되었다. 군사원조의 길이 막혔기 때문에 콘트라 반군은 무기와 탄약을 구입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빠져들었다. 한편, 당시 이란은 이라크와 전쟁으로 미제 무기와 미제무기의 수리부속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던 시점이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 : NSC)가 레바논에 억류되어 있는 미국인 인질을 석방시키기 위해 레바논에 있는 팔레스타인 게릴라들과 석방조건을 놓고 비밀리에 흥정을 벌이고 있었다. 당시 미국무성은 테러리스트들과는 절대로 흥정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성명을 발표해놨으나 미국 일반시민들은 테러리스트들에 인질로 잡혀 있는 미국시민들을 석방시키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을 신랄히 비판하자 백악관은 어떻게든지 인질들을 구해야할 처지였다. 그러나 레이건 행정부는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데 상당한 자금이 필요했으나 공개적으로 국가예산을 전용할 수가 없게되자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궁여지책으로 CIA를 시켜 비밀리에 이란에 무기를 판매하고 그 대금의 일부를 레반논에 억류되어 있는 미국인들의 몸값을 지불하고 또한 니카라과의 콘트라 반군에 지원한 사건이 백일하에 폭로되고 말았다. 이란에 대한 무기판매는 전쟁 중인 이란에 무기를 지원하지 않고 테러리스트와 흥정하지 않는다는 미행정부의 공식입장에 위배되는 것이며, 콘트라 반군에 대한 지원은 콘트라 반군에 대한 일체의 직접적, 간접적 지원을 금지한 의회의 볼런드 수정법(Bolland Amendments)을 위반한 것이다. 미국은 백악관의 안보보좌관이었던 올리버 노스 중령(Lt. Col. Oliver North)이 총대를 메고 CIA를 통해 이란에 비밀리에 무기류를 판매한 자금의 일부로 인질들의 몸값을 지불하고 나머지 자금을 콘트라 반군에 지원해준 것이 여러 경로를 통해 밝혀졌다. 그 가운데 하나는 중동의 한 작은 신문사에서 타블로이드판(Tabloid Edition)으로 출간되는 신문의 기사에서 미 CIA가 한 아랍 무기상을 통해 이란정부에 무기를 판매했다고 보도한 바 있었다. 또 다른 경로는 니카라과 정부에 의해 밝혀졌다. 미 의회는 니카라과정부의 항의서한을 접하고 이를 문제를 삼아 이 사건의 조사를 위하여 L.E.월시 Walcy가 특별검사로 임명되었으며, 타워위원회(Tower Committee)가 설치되고, 양원특별위원회의 청문회가 열렸다. 청문회의 결과 NSC가 이란과 니카라과에 대한 정책을 비밀리에 수행하고 의회에 위증한 것이 밝혀졌으며, CIA의 국장 케이시(W.J.Casy) 등이 연루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상하양원의 합동원 청문회(Joint Hearings)에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증언에 나갔던 사건이었으며, 그 당시 사회여론이 만약 레이건 대통령이 콘트라 자금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 탄핵받아야 한다는 여론이 압도적이었던 것이다. 미국 정부가 좌경화해 가는 니카라과 정부를 전복하기 위한 군사지원 자금을 마련할 길이 없어 궁여지책으로 위와 같은 변칙적인 방법을 동원할 정도로 국민의 혈세를 자의로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미 의회가 국민의 혈세는 의회의 승인 없이는 단 한 푼의 돈이라도 사용할 수 없도록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는 것이 우리 나라와 다른 점이었다. 자금지원은 미국 국가안보회의(NSC)의 보좌관인 노스 중령이 NSC의 의장인 포인덱스터(J. Poindexter) 해군소장의 승인을 받아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레이건 대통령이 연루되었을 것이라는 의혹도 강하게 제기되었다. 또한 월시 특별검사의 조사로 포인덱스터의 전임자인 맥팔레인(Robert McFarlane)이 의회에 대한 위증혐의로 기소되었으며, 포인덱스터(Poindexter)와 노스(North) 중령 등 6명도 함께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92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조지 부시(George Bush)가 관련자 모두를 사면하였는데, 그러한 결정은 부시 자신의 관련여부에 대한 의문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한동안 미국 행정부와 의회간에 미묘한 갈등과 권력싸움을 벌였던 대사건이었다. 이러한 사건만 보드라도 한국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국민의 혈세를 예산 목적의 용도가 아닌 경우에 단 한 푼도 대통령이 자의로 집행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한국정부가 당시에 걸프전비의 일부를 국회의 동의 없이 지출했다면 이는 분명히 대통령의 권력남용이다. 이는 중대한 범죄행위로 마땅히 탄핵받아야 하지만 걸프전 비용 분담금을 어떤 방법으로 변칙 처리했는지 알 수 없으며 또한 아무도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걸프전 비용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계산한 청구서 금액이었다. 이 전쟁 비용은 세계 제일 부자인 사우디가 540억 달러, 전쟁 직접피해 당사자인 쿠웨이트가 250억 달러, 그러나 전쟁에 참가하지 않은 일본과 독일이 각각 130억 달러와 100억 달러 순이었다. 나머지 비용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아랍 산유국들과 캐나다를 비롯하여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서유럽과 기타 국가들이 공동으로 부담했다. 사우디와 쿠웨이트 그리고 일본과 독일은 초강대국인 미국의 강요로 이 막대한 금액을 지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우디와 쿠웨이트는 자국 영토 또는 자국 영토 인근에 전쟁이 벌어졌기 때문에 전비의 절반을 부담했다 치더라도 일본과 독일이 전비의 상당 부분을 부담한 것은 참으로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미국은 걸프전 당시 독일과 일본에 대해 전쟁에 참여하라고 요구하였으나 이들 국가는 국민들의 완강한 반대로 전쟁에 참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들 국가에 대해 유엔이 결의한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를 치르라는 말로 이들의 입을 막아버렸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일본은 다시는 이런 불평등한 국제적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국회에서 위헌이라는 야당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여당의 힘으로 밀어붙여 PK활동(Peace Keeping Activity) 법안을 가결시켰던 것이다. 일본은 걸프전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기부금을 강요당한 설음을 되씹어야 했던 경험으로 일본의 헌법정신에 위배되는 소위 PK 활동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길을 터 놨다. 지금 일본은 유엔의 요구로 한국과 함께 동 티모르(East Timor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이 일부의 전비를 부담했다고 하지만 그 말은 신빙성이 없고 1천5백억 달러의 거의 대부분은 전쟁에서 사용한 무기대금의 명목으로 고스란히 미국 군수재벌의 금고로 들어갔던 것이다. 전쟁비용을 대주는 세계 최고의 부자나라들이 자금을 대주는 바람에 무기와 물자를 흥청망청 써대는 이상한 전쟁을 치렀다. 재래식 무기로만 무장되어 있는 이라크로서는 용빼는 재주가 없는 이상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국들과의 도저히 전쟁을 더 이상 끌고 갈 수는 없었다. 전쟁이 하루하루 길어질 때마다 미국은 고가의 무기 사용료와 인건비, 그리고 간접비용 등을 돈을 지불하는 물주들에게 청구서를 제출하면 그만 이다. 미국은 미군은 한 명도 희생당하지 않고 돈은 물 쓰듯이 쓸 수 있다니 세상에 이렇게 걱정 없고 편한 전쟁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미국은 걸프전으로 엄청난 떼돈을 벌 수 있었다. 어느 누구도 미국이 돈을 물 쓰듯이 썼다고 공개적으로 미국을 비난하는 국가는 없었다. 밤에 이불 속에서 작은 목소리로 불평은 했겠지만 말이다. 세상에 이렇게 편하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Posted on: Tue, 16 Jul 2013 05:01:4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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