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학살 부끄러운 미국의 역사 6. 코소보 - TopicsExpress



          

전쟁과 학살 부끄러운 미국의 역사 6. 코소보 전쟁 스테판 두산(Stefan Dusan)이 1196년 발칸반도 북부에 [네만야]왕조를 건설했다. 오늘날의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등을 모두 포괄하는 네만야 왕조의 마지막 황제인 우로스(Uros) 5세 시절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오스만 터키제국의 침공을 받아 우로스 5세의 후손인 라자르(Lazar) 황태자를 중심으로 끝까지 저항하여 처음에는 승승장구하던 오스만 제국의 술탄 무라드(Sultan Murad) I세를 죽이는 큰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세르비아의 라자르 황태자는 오스만 제국의 힘에 밀려 마침내 1차 코소보(Kosovo) 전투에서 오스만 터키제국의 왕위를 이어받은 바예지드(Bayezid)에게 붙잡혀 목이 잘려 죽었다. 이후 세르비아는 다시 소규모 영주국으로 분활되어 터키에 대항하여 싸우다가 1496년 중세기부터 이어져 왔던 슬라브 민족이 일으킨 네만야 왕조가 멸망했다. 그 동안 발칸반도의 강국으로 군림했던 세르비아는 19세기까지 터키제국의 식민지로 살아왔다. 세르비아 왕국이 오스만 터키제국에 항복한 후 19세기까지 세르비아인들은 거의 4백년 동안 서유럽 문명과는 완전히 차단된 채 이슬람 종교를 강요받았고 그들의 문화와 생활 양식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오스만 터키제국의 온갖 잡역과 노역, 그리고 군대에 종사하는 등 치욕적인 노예 생활로 민족의 명맥을 유지해 왔다. 세르비아 사람들은 코소보 전투에서 적에게 포로가 되는 것보다는 죽기로 맹세하고 결사 항전하다가 모두 죽음을 택했다. 세르비아 인들은 코소보에서 오스만 터키제국과의 전투에서 죽은 영웅들을 추모하고 이 곳을 세르비아 인들의 성지(聖地)로 정했다고 한다. 코소보 문제를 다루기 전에 세르비아주민들에게는 이렇게 코소보가 남다른 국민정서가 담겨있는 땅이라는 것을 이해해야할 것이다. 이에 반해 코소보에 살고 있던 이슬람 계 주민들은 세르비아 주민들이 왕자이하 모든 국민이 오스만제국에 항거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결사항전하고 있을 때 오스만 제국편에 서서 세르비아와 싸웠으며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의 나치스편을 들어 세르비아를 공격하였던 배반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던 민족이었다는 것이 세르비아 국민들에게는 영원히 잊히지 않는 악연관계였다. 코소보 사태는 다수를 점하고 있는 알바니아계의 이슬람교 주민들이 자치주의 틀을 벗어나 세르비아계의 유고연방으로부터 분리 독립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분쟁이다. 오스만 제국이 발칸반도를 지배하기 시작한 이래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알바니아계 이슬람주민들을 대량으로 이주시켜 세르비아주민들과 마찰을 빚게된 동기가 되었다. 한편, 세르비아인들은 코소보로 침공해 들어온 오스만 제국과 죽음을 무릅쓴 전쟁에서 조국을 위해 숨져간 세르비아의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 16세기부터 세르비아 인들은 코소보 자치주의 수도인 프리슈티나(Prestina) 교외에 그라카니차 (Gracanica) 수도원을 세우고 매년 6월 28일 죽은 이들의 넋을 기리는 거국적인 행사를 치르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도 매년 6월 6일 현충일에 국립묘지에서 전국민의 대표자들과 대통령을 비롯하여 3부 요인들, 정부 각료들, 군관계 인사들과 사회 각급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국을 지키다 사망한 호국영령들의 넋을 추모하는 의식을 치르고 있다. 미국도 매년 5월 15일 미국 현충일 (Memorial Day)에 앨링톤 국립묘지(Arlington Natinal Cemetery)에서 미국 대통령이하 전 각료와 군 관계자들과 미국 사회의 각급 지도급 인사들이 모두 참여하는 거국적인 행사를 치르고 있다. 코소보와 접경하고 있는 이슬람 종교의 알바니아 계 주민들이 땅이 척박하고 살기가 힘들어져 조국인 공산주의 국가 알바니아로부터 은밀히 코소보로 월경하는 숫자가 증가하여 지금은 코소보 원주민인 세르비아 주민과 이슬람 주민의 인구비율이 역전되어 세르비아 계가 자국 영토 내에서 소수 민족화 되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세르비아가 수세기에 걸쳐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체코슬라비아, 터키, 등의 침략을 받아 전쟁을 치르는 데 정신이 없었을 때 알바니아계 사람들이 점차 코소보지역으로 불법 월경하여 거주하고 있었다. 점차 그들의 수가 늘어나 알바니아 계 이슬람 사람들의 수가 세르비아 계 사람들을 능가하자 그들은 자치주로 독립하겠다고 선언한 것이 코소보 전쟁이 발단된 직접적인 동기였다. 만일 인천 직활시에 거주하는 중국 화교들이 수십 년에 걸쳐 중국인들을 밀입국시켜 그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주민들의 숫자를 능가하게되자 중국화교들은 인천시에 자신들의 인구가 더 많으니 그 지역구를 중국화교의 자치구(自治區)로 승격하거나 독립하겠다고 선언했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어떻게 했을까? 코소보 전쟁은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그리고 보스니아 3국이 싸우는 것과는 완전히 별개의 전쟁이었다. 세르비아로서는 코소보는 천 년이래 자국의 영토요, 더구나 14세기에 오스만 터키가 발칸반도를 침공해올 때 코소보에서 터키군에 대항하여 결사 항전하다 전사한 호국 영령들을 기념하고 있는 성지(聖地)였다. 그러한 성지를 미국은 유고슬라비아의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고 알바니아 계 일부 소수민족과 알바니아로부터 은밀하게 불법으로 이주해 들어온 이슬람 사람들이 합세하여 세르비아인들의 피와 눈물, 그리고 조상들의 영혼이 담겨 있는 성지(聖地)를 미국을 비롯한 내토는 이슬람 주민들에게 자치를 허용하려는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다. 세르비아로서는 도저히 이러한 사태발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미국인들에게 앨링톤 국립묘지(Arlington National Cemetery)를 영국에게 내주라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미합중국의 수도인 워싱톤 D.C의 전체 인구 가운데 흑인 인구가 70 퍼센트를 넘는다. 만일 이 들이 미합중국 연방으로부터 분리 독립하겠다고 결의한다면 미국정부는 이 흑인 소수민족에게 미합중국 수도를 내주고 백악관을 비롯하여 미연방 기구들을 모두 인접 지역으로 천도할 의지가 있는 지 묻고 싶다. 1989년 코소보의 인구분포가 역전된 것을 만회시키려고 유고연방은 코소보에 허용했던 자치권을 박탈했다. 이에 저항하는 코소보의 알바니아 계 주민들의 독립운동을 억압하기 위해 유고연방이 이들을 가혹하게 진압했다. 코소보의 알바니아계로 구성된 코소보 해방군은 알바니아로부터 대량의 무기와 탄약을 반입하여 세력을 강화해갔다. 1998년에는 코소보의 해방군은 코소보 영토의 거의 절반에 이르는 지역을 장악할 정도로 군사력을 증강시켰다. 일부 정보소식통에 의하면 1998년 한 해 동안에 180 명의 세르비아 경찰과 120 명의 유고연방군 그리고 1,700명의 코소보 해방군이 사망했다고 지적했듯이 코소보 사태는 미국이나 서유럽 국가들이 개입하여 다짜고짜 흑백논리로 죽일 놈 살릴 놈을 가리는 것보다는 세르비아 계와 알바니아 계간의 전쟁(실제로 코소보에서는 전쟁이라는 단어를 붙일 정도의 전쟁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유혈충돌을 중단시키고 민족적 갈등을 해소하고 공동이익을 위한 공동 자치제도를 실시하는 자체적인 코소보문제 해결하려하지 않고 힘으로 밀어붙였던 것이 오히려 불타는 집에 기름을 붙는 격이 되었다. 미국과 내토의 최첨단 전투기를 투입하여 공습을 감행했다. 미국의 공습으로 많은 기간산업이 파괴되고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게 되자 세르비아계와 알바니아계 사이에 더욱 격렬한 싸움이 벌어져 서방측의 무력개입전보다 더 많은 희생을 치르는 결과를 가져왔다. 신 유고연방정부가 코소보에 거주하는 이슬람계 주민들의 요구를 제재하는 데 가혹한 방법을 사용했는지는 몰라도 미국이 유고슬라비아에 취한 스테이트 테러(State Terror)방식은 인권차원에서 그리고 국제법상으로도 절대 용서할 수 없는 해적행위인 것이다. 세계 사면위원회(International Amnesty)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미 공군 전투기의 공습으로 상당수의 유고슬라비아 국민들이 사망한 것은 미국이 저지른 범죄행위라고 비난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유고슬라비아 군이 코소보에 거주하는 이슬람 주민들에 대해 인종학살을 자행했다거나 여성들을 강간했다는 것은 일부 있었을 것은 결코 부인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Slobodan Milocevic) 유고 대통령은 알바니아 계 주민들의 불법적인 밀입국으로 유고연방, 코소보 자치주의 인구분포가 세르비아 계 주민 수효보다 이슬람 계 인구수효가 많아져 인구분포가 역전된 것을 만회하려고 불법이주자들을 색출하여 74만 명에 달하는 이슬람계 불법 이주자들을 알바니아로 되돌려 보내는 과정에서 발생된 사건이었을 것이다. 알바니아계 불법이주민들을 강제 퇴거시키는 과정에서 이에 반발하는 이슬람 계 주민들과의 마찰과 소위 코소보해방군(Kosovo Liberation Army : KLA)과의 전투로 일어난 인명의 피해도 상당수 포함되었을 것이다. 만일 밀로셰비치가 진정으로 이슬람 계 주민들을 학살하려했다면 코소보에 거주하고 있는 이슬람 계 주민 백 만 명이 넘는 인구 가운데 겨우 340명(미국정부의 공식 발표) 뿐이었을까? 불법이주자들을 강제 퇴거시키는 것에 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미국정부, NATO, 서방매스컴의 언론횡포이거나 아니면 의도적인 술수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고연방의 전 대통령 밀로셰비치를 처벌하려면 인권유린행위가 유고연방의 최고의 국가권력기관이 직접적으로, 계획적으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개입했는가를 확인할 필요가 있고 또 하나는 과연 비인도적인 재난사태가 존재했었는지 판가름하려면 이 유고연방을 비롯하여 6개 공화국들이 모두 미국과 서유럽국가들이 주장하는 다시 말해서 대대적인 인종학살행위가 존재했었는지를 인식하지 않는다면 를 저질렀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약하다고 하겠다. 유고연방을 인정청소라는 명목으로 처벌하려면 로마교황청과 서유럽이 지지하는 크로아티아가 자국 내에 수백 년간 대대로 거주하고 있던 세르비아계 주민 수십만 명을 강제 추방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것에 대해서도 인종청소를 했다고 서방언론이 매스콤에 보도를 하고 떠들어댔어야 했고 전쟁 범죄자들을 가려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 ICJ)로 보내 재판에 회부시켜야한다. 미국도 매년 미국으로 밀입국한 수천 명에 달하는 멕시코 주민들을 다시 멕시코로 강제로 되돌려 보내고 있다. 심지어는 비록 불법으로 밀입국했지만 그들이 아이들을 미국 공립하교에 보내고 십여 년간 거주하고 있던 멕시코 주민들까지도 색출하여 그들을 불법이주자들이라고 강제추방하고 있는 데 그렇다면 이것도 인종청소가 아니겠는가?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네바다, 루이지아나, 텍사스 등은 원래 멕시코의 영토였으나 미국이 무력으로 빼앗았다는 것을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01년 7월 중순경 신문에 미국연방이민국에서는 10년 이상 미국에 거주하고 있던 멕시코 불법이주자들에게 미국시민권을 부여할 것을 고려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알바니아에서 코소보 국경을 몰래 넘어 들어왔다가 발각된 이슬람 계 주민들을 알바니아로 되돌려 보내는 것과 밀입국한 멕시코 계 주민을 더구나 밀입국한 지 십여 년이 지난 사람을 강제로 멕시코로 되돌려 보내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독자들도 텔레비전으로 시청했겠지만 밀입국하려다 발각된 멕시코 주민들을 미국 경찰들이 곤봉으로 마구 구타하고 사정없이 마구 발길질하는 장면을 목격하지 않았는가? 대항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등 잔혹 행위를 한 것은 인권유린 행위인 것이다. 미국정부가 이들 경찰을 처벌했다는 보도가 없었다. 남이 하면 인종청소요, 자기가 하면 정당한 법 집행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존중한다는 미국식 정의인 모양이다. 2001년 6월 2일자 신문에 라고 보도되었다. 필자가 매스컴에 문의한 결과 모 강대국은 바로 미국군이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전쟁이나 이와 유사한 상황하에서는 더러 이러한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웅변해주고 있는 것이다. 미국, 러시아, 일본을 막론하고 어느 나라건 전쟁 중에 상대국 국민들에게 잔혹 행위를 하고 여성들을 강간하는 행위를 한 것에 대해서는 어떤 전쟁에서도 발생하는 일로서 월남에서 한국군조차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필자가 잔혹 행위를 옹호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단지 전쟁이라는 인권이 존재하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발칸전쟁은 문명의 충돌이 빚어낸 비극이라고 주장한 하버드대학의 헌팅톤 교수의 주장에 대해 필자는 강대국들이 발칸전쟁의 비극을 이용하여 자국의 국익에 이용하는 것이 발칸전쟁 그 자체보다 더 큰 비극을 낳았다고 생각한다. 코소보 군사개입에 명분이 된 인종청소 또는 인도적 차원의 미국과 내토의 참전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미국이 순수한 인도적 목적만으로 군사개입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미국과 내토는 밀로셰비치의 신유고연방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제시하여 코소보를 공습하기 위해 사전 포석을 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됨은 어쩔 수 없다. 미국의 코소보에 대한 무력개입을 국익차원이 아니라 순수한 인도적 차원이라고 공습을 강행하게 된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아프리카의 르완다(Rwanda), 시에라리온(Sierra Leone), 소말리아(Somalia), 수단(Sudan) 등에서 벌어졌던 대대적인 인종청소 작전으로 지난 10년간 6백만 명이 희생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미국이 정치력과 군사력을 개입하지 않은 것에 대해 납득할만한 이유를 설명해야할 것이다. 미국은 1998년 10월을 전후로하여 코소보 정책이 180도 바끤 경위가 분명치 않았다. 1998년 10월 이전에는 코소보 해방군(Kosovo Liberation Army : KLA)을 불법적인 테러조직으로 분류하고 있었다. 미국정부는 장기적인 전략목표를 갑작스럽게 수정하게된 이유는 미국 국민들의 여론이라고 보기보다는 백악관의 강경파, 국무성의 정책입안부서와 군수산업체의 압력과 에너지 강국들로 구성된 압력단체의 로비 그리고 미국에서 살고 있는 부유한 유태인단체에 의한 은밀한 로비활동의 결과로 수정된 것이 아닌가하는 것이 더 많은 설득력을 얻고 있을 것이다. 코소보에 미군을 파병하는 법안을 미 의회에 상정시켜 미 하원에서는 1999년 3월 15일 219대 191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통과되었던 것을 보더라도 미국인들은 언제나 고립주의를 택했던 전례가 많았다. 필자가 미국에 거주하고 있을 때 많은 미국사람들은 왜 미국이 항상 국제분쟁에 끼어들어 경제원조와 군사원조를 해줘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군사개입을 해야하느냐고 볼멘소리로 불평을 토로하는 것을 많이 목격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만 보더라도 전쟁이 발발한 지 몇 년이 지나서야 미국의 국익에 심각한 영향이 미치게 되자 부득이 참전에 동의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급박하게 참전했던 경우도 있었다. 한국의 6.25 전쟁과 걸프전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전은 소련의 세계공산화의 일환으로 한반도를 잃게 되면 일본에 이어 최종적으로는 미 본토가 위태롭게 될 상황에 몰리게 된다는 강박관념으로 즉각 군사개입을 했던 것이고(물론 일설에 의하면 6.25 한국전쟁은 미국이 의도적으로 북한을 유도한 고의성 전쟁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걸프전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방관할 시 미국의 안정적 에너지 공급원인 중동지역에 심각한 군사적 불균형을 초래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미국국민은 외국문제에 거의 관심이 없으며 설혹 있다고 하더라도 필자가 경험한 바로는 미국의 외교전략을 수정할 만큼 강력한 여론조성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미국정부가 인도적 차원에서 장기전략을 갑작스럽게 수정하여 보스니아에 이어 코소보에 군대를 파견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그리고 신유고연방에 대해 집중적이고도 대대적인 폭격행위에 대해 국제사회가 납득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설득력을 필요로 할 것이 남의 비극이나 약점을 이용하여 자기의 이득을 챙기는 수법은 국제정치사에서 오래 전부터 하나의 관행처럼 행하여져 오고 있었으나 최근세사에서도 그런 예가 있었다. 러시아와 일본이 러-일전쟁으로 기진 맥진하고 있을 때 미국의 시어도 루스벨트 대통령은 러시아나 일본 그 어느 나라가 승자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미국이 3함대를 창설하여 러시아의 흑해함대가 지중해로 세력을 확장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중해를 지키고 있는 것과 같이 당시에도 러시아의 남진 확장세력을 막기 위해 태평양 함대를 증강시키고 있던 미국으로서는 러시아가 승리하여 태평양에 그들의 세력을 확장시키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또한 극동에서 발흥한 신흥세력인 일본이 태평양을 지배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미국은 러시아와 일본을 협상테이블로 불러 모으기 위해 외교경로를 통해 전쟁을 중지하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냈다. 동해에서 있었던 해전에 이어 만주의 여순(旅順)의 육상전에서 지칠대로 지친 러-일 양국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세계 최대의 군사력을 겸비한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마련한 중재안을 싫든 좋든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1905년 루스벨트는 러-일 양국 대표를 뉴햄프셔 주의 포츠머스(Portsmouth) 군항으로 불러들여 자신 특유의 회유와 협박이라는 양면적 술수로 양국이 전쟁을 종식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해전에 이어 육상전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있던 일본으로서는 미국의 중재안에 심히 불만이었으나 루스벨트의 위압적인 흥정 수법에 굴복하여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도 거의 아무런 대가도 얻지 못한 채 종전에 합의하게 된 것에 대해 심히 미국을 원망하게 되었고 이 때 남겨 졌던 미국에 대한 좋지 않은 인상이 차후 태평양 전쟁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다. 루스벨트는 러시아와 일본이 모두 손해를 보는 쪽으로 중재안을 강권했던 것은 미국이 뒤늦게나마 극동아시아와 중국 대륙에 진출하는 데 러시아와 일본군국주의가 걸림돌이 될 것이기에 사전에 이를 제거하려는데 있었다. 소위 말해서 고도의 전략적 차원에서 남이 어려운 여건을 이용하여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강압적으로 러-일 전쟁을 종결시켰던 것이다. 다시 코소보 문제로 화제를 돌리겠다. 미국의 헤랄드 트리뷴 지의 국제판(Herald Tribune International) 2001년 6월 14일자에 코소보에 주둔중인 코소보 평화유지군 사령관은 알바니아계 주민들이 코소보 국경선을 넘다가 체포되었는데 그들은 코소보에서 남쪽에 위치한 마케도니아(Machedonia)로 다량의 무기를 밀반입 하려다 적발되었다고 발표했다. 또한 그는 알바니아계 게릴라들이 마케도니아로 침투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어 국경선을 철저히 감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알바니아계 주민들은 코소보사태로 자치권을 얻는데 진일보하였으며 다음 목표로 인접한 마케도니아 마저 분활하여 코소보에 통합시키려는 계획을 달성하기 위해 마케도니아에서 활약하고 있는 무장 게릴라들을 증강시켜오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알바니아는 미국의 편향적인 군사행동으로 코소보문제가 소강상태를 유지하고 있을 때 알바니아 계 주미들은 다음에는 마케도니아를 타깃으로 삼고 은밀히 자국 주민들을 밀입국시켜 인구증가와 함께 무장을 증강시켜오다가 마케도니아 정부군에 발각되어 격렬한 전투가 진행되고 있다. 2001년 6월 21일자 헤랄드 트리뷴 국제판(Herald Tribune International Edition)에 의하면 내토NATO가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마케도니아에 있는 소수 알바니아계 반군들의 무장해제를 지원하기 위해 수 천 명의 군 병력을 마케도니아로 파견할 용의가 있다는 발표에 뒤이어 보리스 트라이코브스키(Boris Trajkovski) 마케도니아 대통령은 소수민족 알바니아계가 마케도니아를 분할시킬 목적으로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비난했다. 알바니아계에 의해 또 다른 코소보 사태를 일으키려는 음모가 진행 중인데도 불구하고 미국정부는 이를 못 들은 척 방관하고 있었다. 이는 분명히 미국의 국익과는 관련이 없으니까 말이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정치학 교수인 새뮤엘 헌팅톤 박사의 저서 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미국이 체포한 세르비아 병사 한 명으로부터 자백을 받아 그것을 근거로 세르비아 정부를 매도할 수는 없을 것이다. UN 대표가 세르비아 정부와 공동으로 조사하여 확인하지 않은 이상 검증되지 않은 서방 언론 보도만으로 엄연히 합법적인 국가의 수도인 베오그라드(Beograd)의 시가지, 민간 주거지, 발전소와 송배전소, 기간산업시설, 그리고 심지어는 대통령궁 까지도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Tomahawk Cruise Missile)로 무차별 폭격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UN안보리에서 유고슬라비아의 수도를 무차별 폭격하라고 미국에 권한을 부여해 준 것도 아닌 데 미국이 무슨 근거로 국제법을 무시하고 엄연한 합법적인 국가를 폭격할 수 있단 말인가?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인 밀로셰비치는 발칸전쟁의 전범으로 미국을 비롯하여 서방국가들로부터 극렬한 비난을 받았다. 그는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후 집권당에 의해 체포되어 구금된 상태에 있었다. 유고슬라비아 정부로서는 미국의 폭격으로 파괴된 도로, 교량, 발전시설 등의 기간산업시설을 복구할 엄두조차 못 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유고에 수 십억 달러의 원조를 미끼로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을 국제사법재판소에 인계하라고 강요했다. 이에 유고내에서는 미국의 요구대로 밀로셰비치를 미국에 인도하자는 지지파와 국가의 자존심을 돈에 팔아 넘길 수 없다는 반대파로 나뉘어 국론이 분열되어 있으나 점차 미국이 수억 달러를 제공하겠다는 제의를 받고 일부 국민들은 밀로셰비치를 국제사법재판소에 넘기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필자의 생각에는 미국과 NATO가 밀로셰비치가 전쟁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한다면 그를 외국의 사법기관에 넘기기 전에 유고슬라비아의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이 혐의사실을 철저하게 조사하여 미국과 서방국가들이 제시하는 전쟁범죄를 저질렀던 사실이 확인되면 그를 국내법으로 처벌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국제사법제판소로 이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주장하는 범죄사실은 미국의 편향된 잣대로 사건을 부풀렸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을 것이다. 미국을 비롯하여한 NATO의 압력과 돈의 유혹에 넘어가 자국의 대통령이었던 사람을 범죄사실이 확인되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외국의 사법기관에 넘겨준다는 것은 국가의 권위와 국민들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는 처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필자가 우려했던 대로 현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세르비아 공화국에서는 지난 6월28일 저녁 베오그라드Beograd 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밀로셰비치를 그의 지지자들의 항의시위를 피하기 위해 극비리에 보스니아의 NATO군의 공군기지로 보내 국제사법재판소 요원들에게 인계되었다. 이어 NATO 소속 헬기 편으로 네덜란드 헤이그(Hague) 교외에 있는 공군기지로 옮겨졌으며 다음날 새벽 헤이그 소재 전범구치소에 전격적으로 수감되는 수모를 당했다. 세르비아 공화국은 미국을 위시한 서유럽 국가들의 압력과 2001년 6월 30일 브뤼셀에서 열리는 세르비아 원조국 회의를 의식하여 브뤼셀 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밀로셰비치를 인도함으로써 미국 등의 경제지원을 이끌어 내려했던 것이다. 밀로셰비치를 외국에 넘기지 말라는 유고연방 최고재판소의 판결을 무시하고 세르비아 공화국은 2001년 6월 29일 밀로셰비치를 국제사법재판소 요원들에게 인계되었다. 현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세르비아 공화국정권은 미국을 비롯하여한 NATO 국가들의 위협과 금융지원을 해주지 않겠다는 경고에 굴복하여 그들의 전 대통령을 외국 기관에 팔아넘긴 꼴이 되어 버렸다. 미국은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히틀러에 의한 유태민족을 무려 6백만 명이나 대량 학살한 사건과 유고슬라비아 군대에 의해 희생당했다는 주장한 것과 같이 유고연방은 74만 명에 달하는 알바니아계 주민들을 그들의 조국인 알바니아로 강제 퇴거시켰다. 물론 강제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 일부 폭력이나 학살행위가 있었으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았다. 그렇다면 캄보디아의 킬링 필드의 주모자였던 폴 포트, 인도네시아의 동 티모르 대학살의 책임자였던 스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 칠레의 피노셰 대통령, 아프리카 외에 미국은 일본의 히로히또 천왕이 진주만을 공격하여 2,400명의 군인들이 사망하고 또한 태평양 전쟁으로 10여 만 명의 미군들이 사망한 것에 대해서도 일본군의 최고사령관이었던 히로히또 천황을 전쟁범죄자로 체포하여 처형했어야 했다. 6.25 전쟁당시 38선을 넘어 한국을 침공하여 수 백만 명의 한국인들과 15 만 4천명이 미군이 희생당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 북한의 김일성을 전쟁범죄자로 처벌했어야 했다. 그러나 김일성과 일본의 히로히또는 처벌을 받지도 않고 천수를 다 하고 죽었다. 위 예 가운데 하나는 미국의 힘이 미치지 못하여 어찌할 수 없었으나 다른 많은 경우에 학살자들은 미국의 힘이 미치는 곳에 있었으나 미국은 그들에 대해 손을 대지 않았다. 베트남 전쟁에 관해 한 가지만 더 예를 들어보겠다. 1964년 8월 미해군의 매독스 호가 베트민의 통킹만 영해안까지 진입하여 정보수집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는 국제법상 불법적인 행동이었으나 베트민의 경비선이 접근하자 매독스호는 인근 해역에 배치되어 있던 타이콘데로가(Tyconderoga) 항공모함에 연락하여 함재기의 지원을 받아 사전 경고도 없이 공중공격과 함포사격을 퍼부어 베트민 해군경비정을 격침시킨 데 이어 미국 존슨 대통령의 명령으로 미공군과 해군 함대가 베트민의 수도인 하노이와 하이퐁 항을 대대적으로 공격하여 수 만 명의 사망자를 내고 베트남 전쟁에 공식적으로 참전하였다. 베트남 전쟁은 베트민이 미국에 아무런 적대행위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일으킨 범죄행위였다. 위에 열거한 몇 가지 전쟁범죄사실에 의거하여 국제사법재판소에서는 미국정부를 전쟁범죄자로 인정하고 당시 미국 대통령을 전범자로 처단했어야 했다. 이것을 보더라도 국제사법재판소가 권력자들의 어용기구요, 힘있는 국가권력에는 아무런 힘을 못쓰는 허수아비 국제기관이라는 것을 입증시켜 주었다. 유엔헌장의 제7장에 보면 "평화를 위협"이 되는 행위를 할 경우에 제재를 가할 수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것은 유엔이 국내정책의 파급효과로 다른 나라를 불안정하게 하던가 다른 나라에 심대한 피해를 입혔을 경우라면 유엔이 제재를 고려할 수 있지만 인권문제 그 자체만을 가지고는 군사적 개입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유엔안보리의 승인이 없이 외국에 침략하는 행위는 국제법을 위반한 엄연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내토(실질적으로는 미국을 의미한다)는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의 만장일치 결의안을 얻어낼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의도적으로 유엔의 승인을 기피했던 것이다. 미국이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 코소보전쟁에 개입했다고 주장하지만 미국이 개입해서 해결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미국은 코소보에서 민족적 갈등과 종교적 분쟁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방안을 국제사회에 제시할 수 없었다는 데 있다. 미국이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할 수 없다면 무엇 때문에 코소보사태에 개입하여 민족간 분쟁으로 희생된 사람들보다 미국이 전쟁에 개입하여 희생된 사람들의 피해가 훨씬 더 많았다는 데는 미국이 참여한 전쟁의 목적과 인도적 성격에 근본적인 의구심이 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미국이 코소보전쟁에 개입하게 된 배경에는 중앙아시아에 매장된 막대한 량의 석유자원일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가 카스피아해에 풍부한 석유매장량을 갖은 유전에 송유관을 매설하는 위치 문제로 발칸반도와 연계시켜 러시아의 발칸전쟁에 개입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은 설득력이 약하고 너무 비약적인 추측이라고 생각한다. 카스피아해와 발칸반도와는 수천 킬로미터의 거리가 떨어져 있어 일부학자들의 주장은 선뜻 받아들일 수 없다. 소위 는 격언처럼 미국은 1960년 5월 1일 미국은 소련 상공에서 격추된 스파이 항공기 사건에 이어 1964년 8월 베트민의 통킹만을 불법 침입하여 첩보수집 작전을 벌렸던 소위 , 그리고 1968년 1월 원산만에 침입하여 첩보활동을 벌였던 소위 , 특히 푸에블로호 사건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가슴깊이 참회하고 이를 교훈으로 삼기는커녕 2001년 5월에도 중국의 남해안에서 정보수집활동을 하던 미공군의 정찰항공기의 불시착사건이 또 불거져 나왔다. 중국영공 침범을 제지하기 위해 출격한 중국 공군 전투기와 충돌로 미국의 정찰기가 해남도(海南島)에 불시착한 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미국은 U-2기 격추사건이후 군사첩보위성을 지구상에 몇 개씩 띄어 올리고 예상되는 적성국가를 상대로 첩보 수집활동을 하고 있었다. 미국은 일본의 진주만 기습공격 사건이후 항상 누가 미국을 침공하려고 전쟁준비를 하고 있지 않나 하는 피해의식에 젖어 잠을 못 이루는 불면증 환자가 된 모양이었다. 만일 러시아나 중국 아니 쿠바의 군용 항공기가 미국해안에서 12 해리 밖에서 해안선을 따라 비행하면서 첩보 수집활동을 해왔다면 과연 미국이 이를 용납했을까?
Posted on: Mon, 19 Aug 2013 18:29:3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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